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시대가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빛탕감’ 정책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2024년 윤석열 정부의 ‘새출발기금’ 발표 이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원금 90% 감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빛탕감은 과연 현대에만 등장한 정책일까요?
놀랍게도 빛탕감의 역사는 무려 4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빚으로 인한 고통과 그 해결책으로서의 탕감 정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는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모순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고대 문명에서 발견되는 빛탕감의 원형
빛탕감의 최초 기록은 기원전 24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라가쉬에서 발견됩니다. 엔메테나 왕은 움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국가의 모든 부채를 탕감한다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이때 빚 때문에 노예로 끌려간 아들을 어머니에게 돌려보내는 조치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시행된 ‘클린 슬레이트(Clean Slate)’ 의식입니다. 이는 금융 기록을 담은 점토판을 깨끗하게 지워 부채 기록을 말소하는 정기적인 의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구제책이 아니라, 국민이 채무자로 속박당하면 전쟁 가용 병력이 줄어든다는 현실적 고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기원전 594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집정관 솔론이 시행한 ‘세이사크테이아(무거운 짐 덜어주기)’ 개혁도 빛탕감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솔론은 담보로 압류당한 농경지를 포함하여 아테네에 남아 있는 모든 부채를 없애고, 인신 담보 대출을 금지시켰습니다. 이 개혁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고 그리스 내 도시국가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성경 속 빛탕감의 신학적 의미
구약성경에서도 빛탕감은 중요한 사회적 제도로 등장합니다. 레위기 25장에 기록된 ‘희년’ 제도는 50년마다 모든 빚을 탕감하고, 빚으로 인해 노예가 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율법이었습니다. 이는 토지 반환과 함께 사회적 평등을 회복하는 종합적 개혁이었습니다.
신명기 15장에서는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에 가난한 이웃의 빚을 탕감하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빚 탕감이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명령이라는 점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께 직접 호소할 권한이 있다고 명시하여, 부자들의 빚 탕감을 의무화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도 빛탕감의 의미는 깊이 있게 드러납니다. 주기도문의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에서 사용된 헬라어 원어는 ‘빚을 탕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8장의 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에서도 왕의 관대한 빚 탕감을 통해 용서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정종성 백석대 교수는 “예수의 복음에서 빛탕감은 하나님의 은혜와 관련된 서술문이면서 동시에 명령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는 빚 탕감이 종교적 차원을 넘어 사회정의 실현의 핵심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한국의 빛탕감 정책 역사와 현황
한국에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빛탕감 정책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1987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농어촌 부채 탕감’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시작된 이후, 노태우 정부의 ‘농어가부채에 관한 특별 조치법’, 김영삼 정부의 42조원 농어촌 구조 개선 사업이 이어졌습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신용카드 대란 수습을 위해 ‘한마음금융’을 설립하여 다중 채무자의 부채 원금 30~50%를 감면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신용회복기금’을 통해 저신용자를 구제했고,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하여 58만 명의 빚을 최대 50% 탕감했습니다.
2024년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새출발기금’은 125조원 규모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원금을 최대 90%까지 감면하고, 청년층의 ‘빚투’ 손실까지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와 모럴 해저드 우려가 크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대적 빛탕감 운동의 새로운 양상
2012년 미국에서 시작된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 운동은 빛탕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민운동 단체가 시민들의 성금 67만 달러를 모아 부실채권 1473만 달러어치를 매입해 파기했습니다. 이는 부실채권이 원금의 1~10% 가격에 거래되는 현실을 이용한 창의적 접근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2014년 ‘주빌리은행’이 설립되어 비슷한 운동을 펼쳤습니다. 희망살림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도하여 장기 연체된 부실채권을 매입한 후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하는 ‘채무증서 소각식’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정부 주도가 아닌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빛탕감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빛탕감 정책의 명과 암
빛탕감 정책의 긍정적 효과는 분명합니다. 채무 불이행으로 인한 개인의 경제적 파탄을 막고, 사회적 재기 기회를 제공하여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모럴 해저드입니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는 사회적 신뢰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13년부터 4년간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빚을 탕감받은 58만 명 중 10만 6천여 명이 다시 채무 불이행자가 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재산권이 침해되거나 자율성이 훼손되고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 금융 시장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며 “채무자들에게 빚 안 갚고 버티는 게 유리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미래를 위한 빛탕감 정책의 방향
빛탕감 정책이 진정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일회성 구제책이 아닌 근본적 사회 안전망 구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빚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탕감 정책은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정교한 대상자 선별과 엄격한 사후 관리가 필요합니다.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덕적 해이를 일으킬 수 있는 대상을 구분하는 섬세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셋째, 빛탕감과 함께 소득 창출 능력을 키우는 일자리 정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문식 목사는 “경제 노예 공동체로 전락한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긴급구조 차원의 지원과 함께 단계별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빛탕감 정책의 효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데이터 축적이 필요합니다. 1990년대 농어촌 부채 탕감 후 오히려 부채가 3배 증가한 사례처럼, 정책의 실효성을 냉정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4천년을 관통하는 인류의 지혜
빛탕감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것이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인류의 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왕들부터 현대 정부에 이르기까지, 빚으로 인한 사회적 파탄을 막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빛탕감이 만능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마이클 허드슨 미주리대 명예교수는 “예수가 말한 ‘죄 사함’은 곧 ‘빚 탕감’을 의미한다”며 성경적 관점에서 빛탕감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이것이 사회구조적 개혁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빛탕감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정신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찰스 윌버가 지적했듯이, 착한 사마리아인이 항상 좋은 경제학자는 아닙니다. 인도적 고려와 경제적 합리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현대 빛탕감 정책의 핵심 과제입니다.
4천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빛탕감은 인류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과 시점, 범위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고민과 개선이 필요합니다. 빛탕감의 시대가 다시 온 지금,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빛탕감은 경제 정책을 넘어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반영합니다.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연대, 공정과 자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빛탕감 정책의 성공 열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