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베이징, 한 청년의 절망적인 선택
1600년대 후반 청나라 강희제 시절, 안휘성에서 온 왕치화(王致和)라는 청년이 베이징 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과거시험을 위해 고향을 떠나 수도까지 올라왔지만 결과는 처참한 낙방이었죠. 고향으로 돌아갈 면목도 없고, 그렇다고 베이징에서 버틸 방법도 마땅치 않았던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왕치화가 택한 생업은 바로 두부 장사였습니다. 당시 베이징에서 두부는 서민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고, 제법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주는 장사였죠. 그러나 문제는 여름철이었습니다. 덥고 습한 베이징의 여름에는 두부가 쉽게 상해버려서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버려지는 두부가 아까워서 시작된 실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왕치화는 또다시 팔리지 않은 두부들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상한 두부를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죠. ‘혹시 이 두부를 재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습니다.
왕치화는 상한 두부를 햇볕에 어느 정도 말린 뒤, 소금을 뿌리고 항아리에 넣어두었습니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버리기 아까워서 보관해둔 것이었죠. 몇 주가 지나고 나서 그 항아리를 열었을 때, 왕치화는 코를 찌르는 강렬한 냄새에 깜짝 놀랐습니다.
냄새는 지독했지만, 호기심 많은 왕치화는 용기를 내어 한 입 맛을 봤습니다. 놀랍게도 냄새와는 달리 맛은 짭짤하고 감칠맛이 풍부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에서 가장 냄새가 고약한 음식 중 하나인 취두부가 탄생했습니다.
황실까지 올라간 썩은 두부의 기적
왕치화의 우연한 발견은 곧 베이징 시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강렬한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기피했지만,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그 독특한 풍미에 중독되었죠. ‘냄새는 역겨워도 먹으면 고소하다’는 말이 바로 이때부터 생겨났습니다.
취두부의 인기는 점점 높아져서 급기야 청나라 황실 주방에까지 납품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청나라 말기의 서태후도 취두부를 즐겨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서태후가 취두부에 ‘청방(青方)’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죠.
과학적으로 밝혀진 취두부의 비밀
현재까지도 세계 7대 악취 음식으로 불리는 취두부가 이렇게 독특한 냄새를 내는 이유는 발효 과정에 있습니다. 두부를 소금에 절인 뒤 특별한 발효액에 담가 장기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단백질이 분해되어 아미노산으로 변화합니다.
이 발효 과정에서 암모니아와 같은 독성 물질들이 생성되어 강렬한 악취를 발산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동시에 단백질 분해로 생긴 아미노산들이 깊고 복합적인 감칠맛을 만들어내어, 냄새와는 정반대로 풍부한 맛을 자랑하게 됩니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 설화의 진실
흥미롭게도 취두부에는 또 다른 기원 설화도 존재합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이 어린 시절 거지로 지내면서 배고픔을 못 이겨 음식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두부를 먹다가 취두부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죠.
주원장이 황제가 된 후에도 궁중의 호화스러운 음식보다 발효 두부구이를 더 좋아해서 직접 요리사에게 조리법을 가르쳐주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민간에서 전해지는 설화일 뿐이고,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검증된 것은 왕치화의 이야기입니다.
전통 제조법에 숨겨진 장인의 기술
취두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육류, 채소, 허브, 새우, 해산물, 숙성된 우유 등 다양한 재료를 소금물에 넣고 장기간 발효시켜 특별한 발효액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발효액이야말로 취두부 맛의 핵심이죠.
그 다음 신선한 두부를 이 발효액에 담가 최소 몇 주에서 몇 개월까지 발효시킵니다. 발효 기간이 길수록 냄새는 더욱 강해지지만 맛은 더욱 깊어집니다. 마지막에 두부를 꺼내어 햇볕에 말리거나 튀겨서 조리하면 완성됩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왕치화의 유산
왕치화가 창업한 ‘왕쯔허(王致和)’ 브랜드는 현재까지도 존재합니다. 중화라오쯔하오(中华老字号, China Time-honored Brand)로 등록되어 있는 300년이 넘은 중국 발효식품 전문 브랜드로, 베이징을 대표하는 취두부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죠.
특히 북경 왕치화 취두부는 발효 과정에서 두부에 푸른 곰팡이가 생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푸른 곰팡이가 바로 취두부 특유의 맛과 냄새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입니다.
세계로 퍼진 취두부 문화
현재 취두부는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중화권 전체에서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대만의 취두부는 1949년 허난성의 노병인 이명전이 가지고 건너간 것이 시초가 되어, 대만 사람들이 끊임없이 개량하여 현재의 대만식 취두부가 완성되었습니다.
각 지역마다 고유한 특색을 가진 취두부가 발달했는데, 안휘성의 모두부(母豆腐), 창사의 검은 취두부, 닝보의 취두부간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모두 왕치화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어 각 지역의 기후와 문화에 맞게 발전한 것입니다.
300년 전 실패가 만든 성공의 역설
과거시험에 낙방한 한 청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작된 취두부는 현재 세계적으로 알려진 독특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버려질 뻔한 상한 두부가 3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중화권을 대표하는 전통 음식으로 자리잡은 것이죠.
왕치화의 이야기는 우연과 필연이 만나 역사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만약 그가 상한 두부를 그냥 버렸다면, 혹은 호기심을 갖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취두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실패와 좌절이 예상치 못한 창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취두부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