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혹시 신한은행의 진짜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지금은 국내 최대 은행 중 하나로 우뚝 서 있지만, 그 시작은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1982년 7월 7일, 한국 금융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문을 연 신한은행. 이 은행은 일본 전역에 흩어져 살던 재일교포 340여 명이 하나의 꿈을 위해 모은 250억 원으로 탄생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순수 민간자본 은행. 이 한 문장이 당시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 아시나요? 1980년대 초, 한국의 금융시장은 정부 주도의 통제 경제 체제 하에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재일교포들이 만든 민간은행이 허가를 받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1982년 금융시장의 혁명적 변화
1982년 한국 경제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었습니다. 정부는 경기회복을 위해 3차례의 종합경제대책을 실시했고, 금융자율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신한은행의 탄생은 한국 금융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김재익 수석의 금융자율화 정책은 시장기능과 민간의 역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었습니다. 정부주도형 경제운용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의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정책적 의지가 강했던 시기였죠.
이희건 회장과 재일교포들의 감동적인 도전
신한은행의 탄생 뒤에는 이희건 회장(1917-2011)이라는 거대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1917년 경북 경산의 가난한 농민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쓰루하시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끈기와 비전이었습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쓰루하시 시장을 강제 폐쇄하려 했을 때, 이를 막아내 동포들의 큰 신망을 얻었습니다. 1955년 동포 상인들을 규합해 오사카흥은을 설립했고, 이후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신용조합을 제치고 일본 내 가장 실적이 좋은 조합으로 성장시켰습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재일동포들은 국내에 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1973년 교민은행 설립 추진위원회, 1974년 재일 한국인 모국투자기업연합회, 1977년 사단법인 재일 한국인 본국투자협회를 차례로 설립했습니다.
250억 원의 기적, 수트케이스에 담긴 꿈
당시 재일교포들이 자본금을 모으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재일교포들이 수트케이스에 엔화 지폐를 꽉꽉 채워서 한국으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일본 전역에 산재해 있던 341명의 재일동포들이 출자금을 모아 자본금 250억 원을 확보했습니다.
이 돈의 의미는 금액 그 자체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조국의 금융산업 선진화를 바라던 재일동포들의 애국심과 ‘금융보국’ 정신이 담긴 소중한 자본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모국의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재일동포들은 모국의 열악한 금융 환경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은행을 세우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개점 첫날의 놀라운 기록
1982년 7월 7일, 드디어 신한은행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개점 첫날에 일어난 일은 한국 금융사상 초유의 기록이었습니다. 신한은행 본점 영업부를 방문한 고객이 무려 1만 7,520명이었고, 총 5,017계좌에 357억 4,800만 원의 예금이 들어왔습니다.
이 숫자가 얼마나 놀라운지 아시나요? 개점일 하루 동안 자본금 250억 원보다 100억 원이나 많은 예금을 받은 것입니다. 보통예금 178억여 원, 정기예금 96억여 원. 이는 신한은행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기대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혁신적인 서비스의 선구자
신한은행은 창립 초기부터 혁신적인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1984년 2월 신탁업무를 개시했고, 1987년 2월에는 신용카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1988년 11월에는 중구 태평로2가에 본점을 신축 이전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신한은행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여러 서비스들입니다. 1991년 8월 국내 최초로 PC뱅킹 서비스(온라인 계좌조회)를 시작했고, 1993년에는 국내 최초 무인점포인 ‘365일 바로바로코너’를 개설했습니다. 1994년에는 국내 최초로 텔레뱅킹 서비스를 도입하며 비대면 금융의 문을 열었습니다.
IMF 위기 속에서도 빛난 안정성
신한은행의 진가는 1997년 IMF 관리체제 때 더욱 빛났습니다. 금융권의 연쇄 도산 소용돌이가 일어났던 상황에서 신한은행은 1997년 533억 원의 흑자를 거뒀고, 1998년에는 59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시중은행들이 낸 적자 규모만 12조 5,000억 원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이런 안정성의 배경에는 재일교포 주주들의 꾸준한 지원과 철저한 리스크 관리, 투철한 주인의식이 있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신한은행은 고객으로부터 더욱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재일교포들의 한국 경제 기여
신한은행의 탄생은 재일교포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50년대 일본에서 신용조합 등을 운영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재일교포들은 일본에서 각종 규제가 생기며 사업 확장이 어려워지자 한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들은 재일동포와 본국과의 관계강화, 본국에의 투자의욕 고취, 선진금융기법의 도입에 의한 국내금융산업의 발전, 한일경제협력 증진 등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이익을 넘어 조국의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이었습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재일교포의 영향력
현재 신한금융의 재일교포 주주들은 약 5,000명 정도이며, 이들이 보유한 지분율은 약 17%입니다. 이사회 구성원 12명 중 4명이 재일교포 주주로, 지분율은 17%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한목소리를 내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신한금융은 매년 3월 말 서울의 호텔에서 재일교포 주주들을 초청해 ‘신한 퍼스트 구락부(first club) 회원의 밤’을 개최합니다. 이 행사에는 창립 멤버인 재일교포 주주 1세대뿐만 아니라 2, 3세대들까지 대를 이어 참석하고 있습니다.
금융보국 정신의 현재적 의미
신한은행의 창립 이념인 ‘금융보국’ 정신은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금융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의미를 담은 ‘신한(新韓)’이라는 이름처럼, 신한은행은 지속적인 혁신과 도약을 통해 국가 발전과 국민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2006년 조흥은행과 합병하여 현재의 통합 신한은행이 되었고, 2010년 이후 순이익 기준으로 1등 은행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43년이 지난 지금도 창립 당시의 정신을 이어받아 고객 중심의 혁신과 신뢰받는 일류은행을 향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작은 꿈이 만든 큰 기적
1982년 신한은행의 탄생은 역사적 의미가 깊습니다. 재일교포들의 조국 사랑과 금융보국 정신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자본금 250억 원, 총 4개 영업점, 274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작은 은행이 현재 국내 최대 금융그룹 중 하나로 성장한 것은 놀라운 성취입니다.
이희건 명예회장의 좌우명이었던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은 지금도 신한금융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신한은행 1982년의 이야기는 단순한 기업사를 넘어 재일교포들의 조국 사랑과 한국 금융 발전사의 중요한 한 장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꿈과 열정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정신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통해 우리는 도전과 혁신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들
Q: 신한은행이 1982년에 설립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1982년은 한국 정부가 금융자율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로, 김재익 수석의 정책 하에 민간 주도의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던 때였습니다. 이런 정책적 배경과 재일교포들의 10여 년간의 노력이 결합되어 신한은행 설립이 가능했습니다.Q: 재일교포들이 왜 한국에 은행을 만들려고 했나요?
재일교포들은 모국에 투자할 때 금융 서비스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조국의 금융산업 선진화와 한일경제협력 증진, 그리고 본국 투자 촉진을 위해 직접 은행을 설립하기로 결심했습니다.Q: 신한은행의 개점 첫날 성과가 얼마나 대단했나요?
개점 첫날 1만 7,520명의 고객이 방문했고, 총 5,017계좌에 357억 4,800만 원의 예금이 들어왔습니다. 이는 자본금 250억 원보다 100억 원이나 많은 금액으로, 한국 금융사상 초유의 기록이었습니다.Q: 현재도 재일교포들이 신한금융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나요?
네, 현재 재일교포 주주들은 약 1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사회 구성원 12명 중 4명이 재일교포 주주입니다. 매년 ‘신한 퍼스트 구락부 회원의 밤’을 개최하며 창립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