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새의 날: 기후변화로 위협받는 멸종 위기 철새들의 현실과 보전 노력

여러분은 5월과 10월의 둘째 주 토요일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신가요? 매년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기념하는 ‘세계 철새의 날(World Migratory Bird Day, WMBD)’입니다. 철새들의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두 시기에 맞춰 제정된 이 날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우리와 자연의 공존을 다시 생각해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은 세계 철새의 날의 의미와 기후변화로 위협받는 철새들의 현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세계 철새의 날, 그 유래와 의미

세계 철새의 날은 2006년 유엔 환경 계획(UNEP)에서 철새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유라시아 이동성물새 협정(AEWA) 사무국과 이동성야생동물보호협약(CMS) 사무국의 주도로 시작된 이 글로벌 캠페인은 이제 전 세계적인 환경보호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철새는 계절에 따라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며 국경을 넘나드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세계 철새의 날은 다른 환경기념일과 달리 매년 5월과 10월 둘째 주 토요일 두 번에 걸쳐 기념됩니다. 이는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철새 이동이 다른 시기에 이루어지는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2025년에는 5월 10일과 10월 11일이 세계 철새의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2018년부터는 전 세계 주요 철새 보호 기구들이 ‘세계 철새의 날’로 기념일을 통일하고, 매년 특정 주제를 선정해 철새의 중요성과 그들이 직면한 위기를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5년의 주제는 ‘공존의 장: 철새와 함께하는 도시와 지역사회 만들기’로, 인간 활동과 도시 개발이 철새에 미치는 영향과 상생 방안을 모색합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철새들의 현실

철새들은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환경오염 등 다양한 요인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특히 기후변화는 철새들의 이동 경로와 시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2100년 지구의 온도가 3도 상승한다면 조류 서식지 감소로 북미 조류의 3분의 2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EAAF)는 미국 알래스카와 러시아 극동지방부터 아시아를 거쳐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이어지는 주요 철새 이동 경로입니다. 이 경로를 이용하는 많은 철새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이동 패턴에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일부 여름 철새들은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더 이상 남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텃새화’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EAAFP 관계자들
EAAFP 사무국 관계자들 (출처: 뉴스펭귄)

국내에서도 철새들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를 찾은 이동성 물새 중 기러기류가 70% 이상 증가했으며, 기후변화로 인해 희귀 여름 철새인 팔색조의 이동 시기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태계 변화는 단순히 철새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생태계와 결국 인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철새의 종 다양성과 대표적 멸종 위기종

한국을 찾는 철새 중에는 여러 멸종 위기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넓적부리도요새’입니다. 러시아 캄차카반도, 배링해 등에서 번식해 동남아시아까지 8000km를 날아가는 이 작은 새는 세계에 6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심각한 멸종위기종입니다. 한때 새만금 갯벌에서는 200여 마리가 발견되기도 했으나, 새만금 간척사업 이후 국내에서는 해마다 20여 마리만 발견될 뿐입니다.

이외에도 저어새, 흑두루미, 노랑부리백로 등 많은 멸종위기 철새들이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들 철새는 단순히 종 하나의 멸종을 넘어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그들의 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멸종위기 철새들
다양한 멸종위기 철새들 (출처: 뉴스사천)

기후변화가 철새에 미치는 영향

기후변화는 철새들에게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먼저 기온 상승으로 인한 서식지 환경 변화는 철새들의 이동 패턴과 번식 시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철새들은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이동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도착지의 환경이 바뀌면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됩니다.

특히 해수면 상승은 갯벌과 같은 주요 철새 서식지를 감소시키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간척사업, 양식장 건설, 댐 건설 등 각종 개발사업으로 세계 습지의 35%가 지난 50년 동안 사라졌으며, 기후위기는 자연습지를 마르게 하거나 반대로 철새들의 서식지를 물에 잠기게 하는 등 추가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 기상 현상(폭염, 한파, 폭우 등)은 철새들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합니다. 예기치 못한 기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철새들은 이동 과정에서 에너지를 소진하거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새들의 멸종이 인간의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EAAFP 사무국 이지선 재단 코디네이터

철새와 인간 활동의 갈등

철새들은 도시화와 인간 활동에 따른 여러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빛 공해는 밤에 이동하는 철새들에게 특히 큰 위협이 됩니다. 철새들은 달빛과 별빛을 이용해 방향을 찾는데, 도시의 인공조명은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방향을 잃게 하거나 고층 건물에 충돌하게 만듭니다.

불꽃놀이와 같은 행사 역시 철새들에게 스트레스와 혼란을 주는 요인입니다. 밤에 이동하는 철새들은 불꽃의 강한 빛에 방향감각을 잃거나, 폭발음에 놀라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비하게 됩니다. 또한 불꽃놀이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토양과 수질 오염을 통해 철새의 먹이 자원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유리창 충돌도 철새들에게 주요한 위협 중 하나입니다. 철새들은 유리에 반사된 하늘이나 나무를 실제 경로로 착각해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조류 친화적인 UV 코팅 유리와 같은 기술적 해결책이 개발되고 있지만, 이러한 기술의 보급과 적용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보전을 위한 국제적 노력과 탄소중립

철새 보호를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은 22개국을 아우르는 협력체로, 이동성 물새와 그들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정부, 국제기구, NGO, 민간기업 등 40개가 넘는 파트너들이 함께 철새 모니터링, 서식지 보전, 대중 인식 증진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흡수량을 늘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위협을 줄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2024년 2월 출범한 제2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무탄소에너지(CFE), 수소, 인공지능(AI) 등 미래 신기술 관련 전문가를 영입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여성·청년 위원 비중 확대와 노동계 대표성을 제고하는 등 더욱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보전 활동

철새 보호를 위해 시민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EAAFP 사무국과 재단에서는 ‘소액기금 지원사업’을 통해 민간 단체의 철새 모니터링과 대중인식 증진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많은 시민 과학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세계 철새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인천 송도갯벌에서 진행되는 플로깅 행사나 빅버드레이스(Big Bird Race, BBR)와 같은 탐조 행사에 참여하여 철새 서식지를 직접 관찰하고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EAAFP 재단에서는 ‘워터버더(Water-Birder) 후원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후원자들에게는 워터버더 키트가 제공되며, 이를 활용한 탐조 활동 후기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면 추가 혜택도 제공됩니다.

워터버더 캠페인 키트
워터버더 캠페인 후원 키트 (출처: 뉴스펭귄)

우리의 작은 실천이 만드는 변화

철새 보호를 위한 시민들의 작은 실천도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창문에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부착하거나, 밤에 불필요한 조명을 줄여 빛 공해를 감소시키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또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수생태계 보호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지역 내 철새 서식지를 방문하여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철새의 중요성과 위기 상황을 직접 체감하고 보전 활동에 동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탐조는 특별한 장비나 지식 없이도 공원의 작은 연못이나 인근 하천에서 시작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험이 철새 보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환경 단체에 대한 후원과 기부도 큰 도움이 됩니다. EAAFP와 같은 비영리 기구들은 시민들의 기부금을 통해 다양한 보전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는 철새와 그들의 서식지를 보호하는 데 직접적인 기여를 하게 됩니다.

마치며: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한 미래

철새들은 국경을 넘어 지구를 연결하는 생명의 메신저입니다. 그들의 이동 경로와 습성은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이는 지구 생태계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세계 철새의 날은 단순히 새를 보호하자는 의미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상생을 고민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매년 바뀌는 세계 철새의 날 주제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직면한 환경 문제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빛 공해, 플라스틱 오염, 기후변화, 불법 포획 등 다양한 위협 요소들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 모두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2025년의 주제인 ‘공존의 장: 철새와 함께하는 도시와 지역사회 만들기’는 인간의 발전과 자연 보전이 상충하지 않는 미래를 꿈꾸는 메시지입니다. 철새들이 안전하게 이동하고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인간에게도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세계 철새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가 철새와 그들의 서식지에 관심을 갖고, 작은 실천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철새들의 날갯짓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며,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갑시다.

2023년 세계 철새의 날 포스터
2023년 세계 철새의 날 포스터 – ‘물: 새의 삶을 유지하다’ (출처: 녹색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