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출근길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그 날, 지하철 5호선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방화 사건. 한 순간의 광기가 400여 명의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다행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2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든 이 사건, 과연 어떻게 일어났고 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의 모든 것을 상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사건 발생의 순간: 평범한 아침이 악몽으로 변한 그 때
2025년 5월 31일 오전 8시 43분, 서울의 출근 시간대였습니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던 열차 안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400여 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던 8량 편성 열차의 4번째 칸에서 시작된 화재는 순식간에 객차를 연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목격자 오창근(29)씨의 증언에 따르면, 방화범은 “말없이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60대 남성인 범인은 인화성 물질을 뿌린 후 점화기로 옷가지에 불을 붙여 화재를 일으켰습니다. 승객들은 “불이 났다”고 외치며 다른 칸으로 뛰어갔고, 열차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방화범의 충격적인 범행 동기: “이혼 소송 불만”이라는 개인적 분노
경찰 조사 결과, 범인 A씨(60대)는 “이혼 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어 불을 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개인적인 가정 문제로 인한 분노를 무고한 시민들에게 터뜨린 것입니다.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는데, 이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자신의 개인적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수백 명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방화 직후 지하철 선로를 통해 들것에 실려 나오던 중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손에 그을음이 많은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의 추궁 끝에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영등포경찰서는 A씨를 현존전차방화 혐의로 입건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참사를 막은 영웅들: 28년차 베테랑 기관사와 시민들의 협력
이번 사건이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데는 몇 가지 결정적 요인이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28년차 베테랑 기관사와 승객들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이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영등포승무사업소 소속 기관사 A씨는 비상 전화기를 통해 화재 상황을 파악한 즉시 운전석 화면으로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하얀 연기로 가득 찬 4번째 칸을 본 그는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승객들과 함께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기관사가 속한 영등포승무사업소가 사고 한 달 전인 4월 29일에 ‘열차 내 화재 대응 및 구원 연결’ 훈련을 실시했다는 사실입니다. 직원 80명이 참석한 이 훈련에서는 열차 내 연기 발생으로 인한 소화 조치, 연기로 인해 차량이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한 조치 등 이번 사고와 매우 유사한 상황을 가정했습니다.
시간대별 사건 경과: 위기에서 정상화까지
- 오전 8시 43분: 여의나루-마포역 구간에서 화재 발생
- 오전 8시 45분: 승객들 비상전화로 기관사에게 상황 전파
- 오전 8시 47분: 소방서에 신고 접수, 기관사와 승객들이 소화기로 진화 시작
- 오전 9시: 화재 완전 진압, 승객들 선로를 통해 대피 시작
- 오전 9시 45분: 여의나루역에서 60대 방화범 체포
- 오전 10시 15분: 5호선 상하행 운행 정상화
소방당국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화재가 진압된 상태였습니다. 서울 마포소방서 김진철 소방행정과장은 “기관사님의 신속한 대처와 승객의 도움을 받아서 진화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 현황: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21명이 연기 흡입과 찰과상 등 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나 중상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산 피해는 상당했습니다.
서울종합방재센터 일일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전동차 1량이 소실되고 2량이 그을음 피해를 입는 등 재산 피해가 약 3억 3,000만원으로 추산됩니다. 서울교통공사는 방화범을 상대로 손해배상, 구상권 청구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와의 차이점: 왜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보며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떠올렸습니다. 192명이 사망한 대구 참사와 비교해 이번 사건이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차량 소재의 차이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열차 내부에 가연성 물질을 대폭 줄이고 불연재료로 교체했습니다. 둘째, 신속한 대응이었습니다. 기관사와 승객들의 즉각적인 화재 진압으로 불길의 확산을 막았습니다. 셋째, 사전 훈련의 효과입니다. 한 달 전 실시한 유사 상황 훈련이 실제 상황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안전 시설의 효과와 향후 대책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전방위적 안전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교통공사, 소방 등과 지하철 주요 혼잡역사에 대한 화재 시설과 인파 운집 사고 예방 합동점검을 실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운행 중인 전동차 등 지하철 시설물은 물론 서울시와 투자출연기관 등이 관리 중인 모든 다중밀집시설의 경계를 강화하고 CCTV 모니터링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방화범은 어떻게 체포되었나요?
방화범은 피해자인 척 행동하며 들것에 실려 나오던 중 체포되었습니다. 손에 그을음이 많은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의 추궁 끝에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승객들은 어떻게 대피했나요?
화재가 진압된 후 400여 명의 승객들은 지하철 선로를 따라 걸어서 안전하게 대피했습니다. 터널 구간이었음에도 질서정연하게 대피가 이루어졌습니다.
지하철 운행은 언제 정상화되었나요?
화재 발생 약 1시간 30분 후인 오전 10시 15분경 5호선 상하행 운행이 정상화되었습니다. 기관사가 사고 열차를 대피선이 있는 애오개역까지 이동시킨 덕분입니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기적인 안전 훈련, 화재 감지 시스템 고도화, 승객 안전 교육 강화, 정신적 문제가 있는 시민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 체계 마련이 필요합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은 한 개인의 이기적인 분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평소 안전 훈련의 중요성과 시민들의 협력, 그리고 안전 시설의 효과를 입증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개인의 정신 건강 관리부터 사회 안전망 강화까지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