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었던 질병 중 하나가 바로 영양소 결핍으로 인한 질환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섭취하는 비타민과 미네랄의 부족이 과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죠. 역사 속에서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들은 어떤 모습이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대항해시대의 공포였던 괴혈병부터 아시아를 휩쓴 각기병까지, 영양 결핍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대항해시대의 공포, 괴혈병의 역사
15세기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럽 선원들을 가장 두렵게 했던 것은 바다의 폭풍이나 해적이 아닌, 바로 ‘괴혈병’이었습니다. 배에 오래 머물면 갑자기 잇몸에서 피가 나고, 상처가 아물지 않으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이 무서운 질병은 당시 선원들의 직업병이나 다름없었죠.
괴혈병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2016년 독일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소녀 유골에서도 괴혈병의 흔적이 발견되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 질병이 대량 사망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대항해시대부터였습니다. 대항해시대 300년간 괴혈병으로 사망한 선원들만 약 2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마젤란의 세계 일주입니다. 처음 항해를 시작한 선원은 168명이었으나 괴혈병 등으로 인해 돌아온 선원은 고작 55명뿐이었습니다. 무려 2/3가 넘는 선원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죠.
괴혈병의 원인과 해결책
지금은 비타민 C 결핍이 원인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 원인을 알지 못했습니다. 18세기 영국 해군 의사 제임스 린드는 귤이나 레몬 같은 과일이 괴혈병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이 발견이 실제 정책으로 채택되기까지는 약 50년이 걸렸습니다.
영국 해군은 1795년부터 모든 선원에게 레몬즙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영국 선원들은 ‘라임주스’를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라이미(Limey)’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죠. 하지만 여전히 비타민 C라는 물질이 괴혈병을 막는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비타민 C의 실체가 완전히 밝혀진 것은 1932년 헝가리 출신 생화학자 알베르트 센트죄르지가 순수한 비타민 C를 분리해내면서였습니다. 이렇게 과학이 발전하기까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선원들이 과일 몇 개만 먹었더라면 살 수 있었던 죽음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2. 백미의 역설, 각기병의 비극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에서는 다른 형태의 영양 결핍 질환이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바로 ‘각기병’이었죠. 흥미롭게도 각기병은 가난한 사람보다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발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실 각기병이라는 이름은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할 수 없어(I can’t, I can’t)”를 의미하는 스리랑카 원주민의 언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는 증상 때문이었죠.
각기병은 특히 일본에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에도 시대(1603-1868)에는 ‘에도 돌림병’이라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질환이었습니다. 당시 부유한 사람들은 하얀 쌀밥(백미)을 먹을 수 있었지만, 도리어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백미는 도정 과정에서 비타민 B1이 제거되기 때문이죠.
각기병 연구의 역사적 성과
일본 해군 군의관 다카기 가네히로는 1880년대에 해군에서 각기병이 만연하자 이 질병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선원들의 식단을 보리, 야채, 생선 등이 포함된 균형 잡힌 식사로 바꾸면서 각기병 발병률을 크게 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의학계는 각기병이 세균 감염으로 인한 것이라는 잘못된 이론을 고수했습니다. 육군 군의총감이었던 모리 오가이는 세균설을 지지했고, 이런 잘못된 믿음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결국 각기병의 원인은 1910년 일본인 생화학자 스즈키 우메타로가 비타민 B1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면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당시 일본 의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후 서양의 과학자들이 같은 발견을 하면서 비타민 B1의 발견 공은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현대 영양학에 따르면, 18세 이상 성인의 하루 비타민 B1 권장량은 1.1mg입니다. 이는 현미 100g에 들어있는 양보다도 적은 양이지만, 당시에는 이런 지식이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습니다.
3. 햇빛 부족이 만든 질병, 구루병
또 다른 영양 결핍 질환으로 ‘구루병’이 있습니다. 비타민 D 결핍으로 인해 뼈가 약해지고 변형되는 이 질환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구루병은 흥미롭게도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공장 도시의 대기 오염과 좁은 골목길, 그리고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생활 패턴이 햇빛 노출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햇빛은 인체가 비타민 D를 합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니까요.
영국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구루병이 너무 만연해 ‘영국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1921년 조사에 따르면 뉴욕 도심에 사는 1세 미만 어린이의 75%가 정도 차이는 있으나 구루병 증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특히 흑인과 갓 이주해 온 이탈리아계 아기들에게 더 많이 발생했죠.
구루병의 역사적 연구
구루병을 처음으로 의심한 사람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명한 의사인 소렌스 에페수스였습니다. 하지만 구루병을 질병으로 최초로 보고한 것은 17세기 영국 의사 다니엘 위슬러였습니다.
비타민 D는 영국의 과학자 에드워드 멜란비가 발견했습니다. 그는 구루병에 걸린 개를 대상으로 실험하여 정상적인 성장에 필요한 물질들이 지방에 섞여 있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를 ‘지용성 A’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연구를 통해 이 물질이 새로운 비타민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비타민 D로 명명되었습니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양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평생 뼈 변형으로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이는 영양 지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슬픈 역사적 사례입니다.
4. 3D의 악몽, 페라그라(펠라그라)
나이아신(비타민 B3) 결핍으로 인한 ‘페라그라(펠라그라)’는 “3D”로 알려진 특징적 증상을 보입니다. 피부염(Dermatitis), 설사(Diarrhea), 치매(Dementia)가 바로 그것입니다. 피부가 암갈색으로 변하고 거칠어지며, 심각한 소화 장애와 정신 착란까지 겪게 되는 이 질병은 20세기 초 미국 남부 지역에서 특히 큰 문제였습니다.
당시 미국 남부의 가난한 농부들은 주로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았는데, 옥수수에는 나이아신이 부족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섭취한 형태의 옥수수는 나이아신이 인체에서 이용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죠.
반면 중남미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었음에도 페라그라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옥수수를 석회수에 담가 조리하는 ‘니스타말리자시온(Nixtamalization)’이라는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나이아신이 인체가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되었던 것이죠.
미국의 의사 조셉 골드버거는 1915년부터 페라그라 연구를 시작해, 이것이 감염병이 아닌 식이 결핍으로 인한 질병임을 밝혀냈습니다. 그의 연구 덕분에 나이아신이 추가된 빵과 곡물이 공급되면서 미국에서 페라그라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5. 영양 결핍이 역사에 미친 영향
영양 결핍 질환들은 단순히 의학적 문제를 넘어 역사의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항해시대의 괴혈병은 많은 탐험대의 실패 원인이 되었고, 각기병은 군대의 전투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영양 결핍이 전쟁의 승패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영양 상태가 좋은 군대는 그렇지 못한 군대보다 질병 저항력이 높았고, 이는 전투력 유지에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또한 영양 결핍은 사회 불평등의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구루병은 주로 산업화된 도시의 빈민가에서 발생했고, 각기병은 역설적으로 ‘백미’를 먹을 수 있는 계층에서 발생했습니다. 페라그라는 미국 남부의 가난한 농부들과 흑인 커뮤니티를 특히 많이 괴롭혔죠.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은 영양 지식의 부재가 얼마나 큰 인적,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했는지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비타민과 미네랄의 중요성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쌓아올려진 지식인 것입니다.
6. 현대사회와 영양 결핍의 새로운 양상
오늘날에는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영양 결핍 질환은 드물어졌지만, 현대적 형태의 영양 불균형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 위주의 식단, 바쁜 생활로 인한 불규칙한 식사 패턴 등이 미세영양소 결핍을 일으키고 있죠.
현대인들은 겉으로 보기에 충분한 양의 음식을 섭취하지만, 질적으로는 영양이 부족한 ‘숨겨진 기아’ 상태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비타민 D 결핍은 실내 생활이 늘어난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흔한 문제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30%가 여전히 비타민 A, 철분, 요오드 등의 미세영양소 결핍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영양 결핍이 아직도 심각한 건강 문제로 남아있죠.
자주 묻는 질문 (FAQ)
Q: 현대 사회에서도 괴혈병이나 각기병에 걸릴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비록 드물지만 극단적인 식이 제한, 알코올 중독, 특정 흡수 장애 등으로 인해 현대에도 이러한 질병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편식이 심하거나 특정 식이요법을 과도하게 따르는 경우 주의가 필요합니다.
Q: 영양제로 모든 필수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나요?
A: 영양제는 균형 잡힌 식단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식품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외에도 다양한 파이토케미컬과 식이섬유 등 건강에 필요한 복합적인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양제는 식단을 보조하는 역할로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 비타민을 과잉 섭취하면 위험한가요?
A: 수용성 비타민(B, C)은 과잉 섭취 시 대부분 소변으로 배출되지만, 지용성 비타민(A, D, E, K)은 체내에 축적될 수 있어 과다 섭취 시 독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비타민 A와 D는 과다 섭취에 주의해야 합니다.
Q: 어떤 식품이 다양한 비타민을 가장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나요?
A: 다양한 색상의 과일과 채소, 통곡물, 견과류, 콩류, 육류, 생선, 계란 등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간, 달걀노른자, 연어, 시금치, 고구마, 견과류 등은 여러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식품들입니다.
결론: 역사가 주는 교훈
괴혈병부터 각기병, 구루병, 페라그라까지 – 이 모든 질병들은 단순한 영양소 결핍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질병들이 간단한 식이 조절만으로도 예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 원인을 몰라 수백 년 동안 고통받았습니다.
역사 속 영양 결핍의 사례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균형 잡힌 식단의 중요성, 과학적 지식의 가치, 그리고 영양 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죠. 또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영양 불균형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비타민과 미네랄에 대한 지식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희생을 통해 얻어진 소중한 유산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욱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식생활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식탁에서 어떤 영양소를 섭취하고 계신가요? 역사 속 영양 결핍의 교훈을 기억하며,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